진지하디 진지한 이야기를 굉장히 익살맞게 그려낸 <토르 3: 라그나로크>.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짜임새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난 진지한 이야기는 진지하게 끌고 가는 걸 좋아한다. 대놓고 B 냄새를 풍긴다면 또 말이 달라지겠지만, <토르 3: 라그나로크>는 B 성향을 보이기보단 풍자적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피식하고 웃으면서 즐기다가도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익살맞은 코미디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사카아르 행성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너무 손쉽게 그려졌고, 이는 웅장한 시대극 성향을 띨 수 있었던 이야기를 그저 '토르의 모험극'으로 한정해버렸다. 감독이 감독이니 만큼 당연한 결과물이긴 한데, 솔직히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달까. 재미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볍게 즐기기 나쁘지 않은 영화다.
이전 토르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딱 그 정도라 생각한다.
너무 과한 악평 아니냐는 얘길 할 수도 있지만, 난 재촬영과 즉흥 촬영으로 점철된 이 영화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큰 호감을 갖고 있진 않다. 게다가 <토르: 천둥의 신>이나 <토르: 다크 월드>를 그렇게까지 재미없게 보지도 않았다. 그냥 취향 차이라고 생각해주시길.
<토르 3: 라그나로크>를 디즈니 플러스에서 4K HDR 아이맥스로 볼 수 있었다 따져보자.
일단, <토르 3: 라그나로크>는 토르 시리즈 중에서 가장 화려한 영상의 영화다. 그래서 아이맥스의 시원함이나 HDR의 화려함이 배가될 거라 예상했는데, 전자는 내 예상이 맞되 후자는 틀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터널스>처럼 HDR 그레이딩을 아예 개판오분전으로 날려먹은 거라면 모를까, <토르 3: 라그나로크>의 HDR 그레이딩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문제는 화려한 빛이 휘몰아치는 장면이 여럿 존재함에도 그 빛에 300nit 이상의 빛을 사용하지 않는 듯한 느낌. ABL이 작동한 건가 싶어서 자막의 밝기를 비롯해 이것저것 잘 살펴봤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즉, 이는 의도되었거나 (밝기 조절에만 성공한) 그레이딩 실수일 것이다.
화려함이 배제된 HDR 그레이딩은 클라이맥스 전투씬 직전까지도 계속되다가 토르가 난간에서 완전히 각성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중단된다. 토르의 번개들이 휘몰아치는 장면에선 눈이 시릴 정도로 발광하며 디스플레이의 HDR 성능을 테스트한다. 이렇게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야 HDR 효과를 강조한 게 의도된 거라면 클라이맥스를 강조한 셈이 되므로 나름 괜찮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온 디즈니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는 그냥 그레이딩 실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직도 <이터널스>의 HDR이 엉망진창인 채로 남아 있는 걸 보시라.)
전투씬 대부분을 수놓은 아이맥스 화면비와, 클라이맥스에 한정해서 쓸 만한 HDR 그레이딩이 열일하는 동안 <토르 3: 라그나로크> 영상의 해상력은 태업을 했다. 블루레이 때엔 잘 느껴지지 않던 해상력 저하가 단번에 눈에 띌 정도니 말 다했다. 아마 업스케일링 4K로 만들어진 영상인 듯한데, 아무리 그래도 아리 알렉사 65까지 동원된 영화가 이렇게 해상력이 떨어지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디지털 촬영인 영화의 장면별 해상력 편차가 이렇게 심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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