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디즈니 플러스

블랙 팬서 (2018) 디즈니 플러스의 아이맥스 4K HDR로 감상한 후기

쵸지 2022. 10. 14. 08:25
반응형

블랙 팬서 포스터

 

 내가 <블랙 팬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세력의 순진함이다. 강력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있을 때 세상이 그 나라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면 순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와칸다는 누군가를 도우면서 방어까지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나라라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에서 비브라늄과 그로 말미암아 생긴 테크놀로지는 그야말로 치트키에 가까우며, 비브라늄이란 자원을 위해서 전 세계 지도자들은 핵전쟁을 불사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수천만이었으니까 비브라늄을 탈취하기 위한 3차 세계 대전은 수억일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와칸다 인근에서 와칸다의 무기에 공격을 받고 생명이 없는 유기물이 되어버릴지라도 비브라늄을 위해서라면 전 세계 지도자들은 유기물의 산을 쌓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걸 수천 번 증명해왔다. 아니, 수만 번은 되지 않을까. 근대만 보더라도 식민지 시대로부터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아프리카 내전, 중동 전쟁이 증명한다. 지나치게 편중된 자원은 반드시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역사나 정치에 대한 기초 상식만 있어도 <블랙 팬서>가 얼마나 순진한 작품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블랙 팬서>를 보고서 몰입을 못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개방한다'라는 전제가 있다면, 차라리 킬몽거처럼 복수를 꿈꾸며 전쟁을 벌이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고 와칸다를 위한 길이다. 그리고 상식적이다. 개방하는 순간부터 전쟁은 무조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니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은가.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블랙 팬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킬몽거라고 하는 것 아닐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킬몽거의 사고 회로에 동의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단순한 결론 측면에서 와칸다에 더 이득이 되는 인물은 킬몽거가 아닐까 한다는 얘기다. 참고로 이 사실을 감독도 완전히 외면하는 건 아닌지 <블랙 팬서 2: 와칸다 포에버>의 예고편이 비브라늄 독점을 두고 국제 사회가 와칸다를 공격하는 내용이 존재한다. 그 비중이 얼마나 클지는 알 수 없지만.


 <블랙 팬서>는 단순한 오락 영화로서도 다소 아쉬운 점이 많다. 막대한 제작비를 사용해서 만든 작품인데, 그 제작비에 걸맞은 스케일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클라이맥스의 전쟁씬은 기원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투도 이렇게 한심하게는 안 했겠다 싶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부정적 의미로 입을 쩍 벌린 바 있다. 지금에 와서는 로얄 패밀리의 왕권 다툼을 다뤘다는 점에서 동일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아쿠아맨>이 엄청난 스케일과 장대한 전투씬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더 부정적이다. 동네 깡패들의 패싸움이라도 되는 마냥 우당탕탕하는 <블랙 팬서>의 클라이맥스를 디즈니 플러스의 아이맥스로 보니까 더욱 초라하다. 차라리 기존 2.39:1 시네마 스코프 화면비가 <블랙 팬서>의 스케일에는 어울린다.

 

반응형

 

블랙 팬서 디즈니 플러스 상세 정보


 그래서 결국, <블랙 팬서> 4K HDR 아이맥스 버전은 감상을 중단하고 액션씬만 살펴봤다. 어차피 아이맥스 시퀀스는 액션씬에 몰빵 되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일단 워낙 밝은 화면이 많은 <블랙 팬서>기 때문에 HDR의 펀치력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기껏 해봐야 부산 시퀀스가 볼 만하다. 부산의 밤을 배경으로 자갈치 시장에서 광안대교에 이르는 공간의 야경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부산 체이싱 시퀀스는 흑인 배우들의 검은 피부에 살짝 비친 조명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광안대교의 조명까지 HDR의 위력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그레이딩 되었다. 


 반면, 가장 기대했던 티찰라와 킬몽거의 비브라늄 채굴장 액션씬은 깊은 어둠과 화려한 조명이란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기대 이하다. 아무리 깊은 어둠이어도 보여야 할 게 다 보인다는 HDR의 기초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느낌. 사실, <블랙 팬서>가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을 보이는데, HDR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부산 카지노 액션씬부터가 그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 투성이다. 부산 시퀀스가 HDR의 위력을 펼치는 건 외부씬에 한정된다. 카지노 액션씬조차도 그런 마당에 난이도가 있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그나마 검은색 슈트를 입은 두 주인공의 구분은 확실히 가는 편이란 사실이 유효타다.


 그외의 밝은 장면은 어떠하냐고? 일부 장면은 LG OLED의 ABL이 작동해서 당황할 수도 있을 만큼 밝은 구간이 넓다. 삼성 역시 ABL이 아주 없지는 않으므로 밝은 장면에서 그다지 임팩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럼 기껏 해봐야 광색역으로 표현되는 색이 늘어났다는 것 정도가 HDR 효과라 할 수 있겠는데, 광색역은 SDR과 비교해서 보지 않으면 특장점이 없다. 눈이 민감하고 광색역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SDR이 아닌 HDR로 먼저 감상하고서 '아, 이게 광색역의 힘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하이엔드가 아니면 DCI-P3 색영역을 100% 충족시키는 TV도 드문 편에 속한다. 

 

 따라서 <블랙 팬서>로 HDR 효과를 만끽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차라리 액션 장면을 통째로 아이맥스로 만들었다는 점, 아리 알렉사로 촬영한 3.4K 화면을 4K로 피니쉬 한 화질에 집중하는 쪽이 낫다. 이미 블루레이 때에도 느낀 거지만, 디즈니 플러스의 4K로 보니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화질 한 번 오지게 좋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