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캡틴 아메리카 3: 시빌 워>의 아이맥스를 체크해 보려다가 끌려가는 것처럼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를 봐버렸다.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봐버린 김에 간략한 리뷰도 남겨본다.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의 전반부의 특징은 '후회'다. 꽤나 노골적으로, 빈번하게 'regret'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스티브 로저스의 정체성 방황을 이야기한다. 기껏 목숨을 내던져가며 세상을 구원했는데, 되살아나서 하는 일은 결국 쉴드의 뒤처리 전담반. 심지어 그 쉴드 안에 하이드라까지 기생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으니 후회가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어벤져스>로 꽤 멋진 활약을 펼친 바 있는 스티브 로저스가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에 와서 갑자기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건 전부 제이슨 본 시리즈의 영향일 수밖에 없지만, '후회' 영역에 방대한 스케일을 담고, 마블식으로 적절하게 어레인지 한 결과 그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성공적으로 이식된 마블식 첩보물이다.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의 후반부는 목적을 갖게 된 스티브 로저스의 '체제 부정'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이는 스티브 로저스를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주제 의식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악이 기생해서 잔뜩 오염된, 재생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면 부수고 새로 시작하는 게 옳다는 어쩌면 섬뜩한 주장. 물론, 지구상 모든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용을 잃어버린 듯한 봉준호 감독이 '차라리 다 작살내버리는 게 낫다'라고 주장하는 <설국열차>와 다르게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는 쉴드라는 단체에만 국한했지만, 두 영화 모두 크리스 에반스가 체제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 때문에 꽤 재미있는 게 사실이다.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영화다. 여전히 내게 있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다. 이런 수준의 히어로 영화는 마블, DC 통틀어서도 매우 드물다.
디즈니 플러스는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를 4K HDR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살펴보자.
일단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의 특징은 낮 장면이 많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상당히 밝은 배경에서 전개되며, 이는 HDR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일단 눈에 무리가 가는 영상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HDR 그레이딩을 할 때 밝은 배경은 그리 높은 빛을 주지 않는 데다 TV 자체도 알아서 밝기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최신 TV에는 HDR시 하이라이트 밝기 제한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서 아주 밝은 하늘 중앙에 해가 떠있는 영상이 있다고 치자. 이 경우 해를 표현하고자 TV에서 방출하는 빛은 최대치에 비해서 매우 낮다. 하이라이트의 중간에 들어가야 하는 태양 혹은 조명 빛에 제한을 둔다는 얘기다. 최대 800nit를 자랑하는 LG의 OLED는 600nit까지 제한이 되고, 만약 하얀 화면이 50% 이상을 차지하면 ABL(화면의 일정 크기 이상이 하얀색일 때 빛을 강제로 절반으로 줄이는 기능)까지 작동해서 빛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최대 2000nit를 자랑하는 삼성의 miniLED는 ABL으로 인한 밝기 제한이 거의 없는 대신 LG보다 더 낮은 500nit 이하로 빛이 제한될 때가 있다. 효율적으로 로컬 디밍을 구현하기 위한 알고리즘이라나. 그래서 HDR 영상을 그레이딩 할 때 애초부터 밝은 장면의 밝기를 그리 높게 책정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의 영상이 그렇다.
물론, 중간 중간 어두운 장면이나 실내 장면의 경우는 펀치력 있는 HDR 효과를 느낄 수 있지만, 그게 아닌 대다수의 장면은 그저 평범한, 때로는 (하이라이트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어두운 영상으로 그레이딩 되어 있다. 시원시원한 화면을 보고 싶은 사람에겐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상이다.
속된 말로 유도리를 발휘해서 적절히 화려한 화면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는 구작의 영상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고 있지 않으며,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져>의 HDR 영상은 여러 사람의 감수를 거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기계적, 일괄적으로 처리를 한 것처럼 모든 장면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 캡틴 아메리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도 이런 식으로 만든 것에서 디즈니가 자사 컨텐츠를 다루는 방식을 알게 된다. 다소 실망스럽다.
'OTT > 디즈니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킬몽거의 사상은 정한론과 같지 않다 (2) | 2022.10.23 |
---|---|
토르 3: 라그나로크 (2017) 디즈니 플러스의 4K HDR 아이맥스 후기 (4) | 2022.10.20 |
블랙 팬서 (2018) 디즈니 플러스의 아이맥스 4K HDR로 감상한 후기 (4) | 2022.10.14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2017) 아이맥스 4K HDR 감상 후기 (2) | 2022.10.08 |
캡틴 아메리카 3: 시빌 워 (2016) 4K HDR 아이맥스 후기 (19) | 2022.10.03 |